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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가/ 의서

의가​ 구택규(具宅奎)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08.05.29 조회수5113
구택규(具宅奎 : 1693~175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자는 성오(性五), 호는 존재(存齋)이며, 초명은 명규(命奎)이다. 1714년(숙종 40) 증광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 청환직(淸宦職)을 지내다가 1721년(경종 1)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노론(老論)으로 지목되어 오랫동안 외직에 있었다. 1731년(영조 7) 진주목사(晋州牧使)에 임명되고, 1734년 금성현감(錦城縣監)을 역임했고, 이듬해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갔다. 1736년 동래부사(東萊府使), 이어 장례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 ·승지 ·회양부사(淮陽府使) 등을 거쳐 1740년 부사직(副司直)으로서 찬집당상(纂輯堂上)에 올라 《속대전(續大典)》을 찬술하고,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을 훈석(訓釋)하였다. 1746년 강원도심리사(江原道審理使)가 되었고, 1748년 공조참판 ·형조참판을 거쳐 1753년 한성부판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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